이 내용은 조현철 님의 책 '부의 패턴'을 토대로 하여 작성했습니다.
EU는 유럽에 위치한 26개 회원국 간의 정치/경제 통합체이다. 유럽연합은 '사람, 상품,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하며, 회원국 전체에 적용되는 표준화된 법을 통해 유럽 시장을 발전시키고 있다.
2017년 기준 EU의 GDP는 19.7조 달러로 전세계 GDP의 25% 가까이를 차지한다. (EU의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7%에 불과하다.)
제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구소련이 성장하고 미국의 간섭이 늘자 유럽은 위기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더 이상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경제와 독일 경제를 연동시키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프랑스 경제에 위기가 오면 독일 경제도 위험해지므로 독일이 쉽사리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 경제를 연동시키기 위한 방법은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 출범이었다.
ECSC의 목표는 석탄과 철강의 공동시장 형성을 통해 회원국들의 경제 성장과 고용 증대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독일 루르 지방의 철, 석탄 생산량 증대를 견제하고 싶었던 프랑스와, 두 차례나 세계 대전을 일으키면서 경제를 복구했어야 하는 독일이 먼저 ECSC에 참여했고 이후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협약에 서명했다.
이렇게 1951년 출범한 ECSC는 이후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 EC) 등으로 발전했고 1993년에는 유럽 연합(European Union, EU)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사실 유로화 이전에도 유럽에서 쓰이던 단일 통화가 있었다. 바로 1979년 프랑스에 의해 탄생한 에퀴(European Currency Unit, ECU)였다. 각기 다른 회원국들의 재정 상황을 단일 통화로 측정하기 위한 화폐였다.
독일은 ECU를 쓰지 않았는데, 답 없는 프랑스 경제에 연동되는 에퀴에 발목을 잡히기보다는 미국이 뒤를 봐주는 마르크화로 경제를 운영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었던 미국에서는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로 마르크화의 가치를 대폭 절상시켜버렸고, 답이 없던 독일에서는 1999년 마침내 단일 통화 요구에 응하게 된다.
이 때 독일은 어딘지 모르게 라틴어, 프랑스어 냄새가 나는 에퀴(ECU)를 버리고 독일어, 앵글로색슨 냄새가 나는 유로(EURO)를 단일 화폐로 사용하기를 요구했다. 독일의 참여가 절실했던 프랑스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1999년 에퀴는 폐기되었고 유로가 회원국들의 측정 화폐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유로는 각 회원국의 기존 통화를 대체하고 진정한 EU의 단일 통화로 자리 잡게 된다.
유럽연합의 통화가 에퀴가 아닌 유로라는 데서 보이듯, 현재 EU의 리더는 이를 관철시킨 프랑스가 아닌 독일이다.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진행한 합의를 뜻한다. 이들은 여기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하기로 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는 3년만에 두 배로 뛰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들었다. 독일 마르크화 역시 플라자 합의 이후 30%나 올랐다.
독일은 플라자 합의 이후 급등한 마르크화의 가치가 유로화를 도입함으로써 내려가는 효과를 보게 되었다. 즉 통화가치가 낮춰짐으로써 수출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독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일통화 직전인 2000년에는 33%였지만 10년 후에는 48%까지 올랐다. 품질은 우수하지만 가격이 비싸 수출 비중이 절반 이하이던 독일 자동차 산업은 무려 80% 가까이 수출 비중이 올라갔다.
한편 관광으로 먹고 살던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화폐 가치가 갑자기 높아짐으로써 피해를 보게 되었지만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해 국민 복지 파티를 즐겼다. 단일 통화로 묶이게 되자 이전보다 대폭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국 제품을 수입해줄 시장이 필요했던 독일은 이들 나라에 낮은 금리로 엄청난 돈을 빌려줬다. 정부는 이렇게 빌린 돈을 국민들에게 월급과 연금으로 나눠주다 관광업의 부진으로 침체가 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 위기까지 와 버렸다. 이렇게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는 짧은 파티를 끝내고 기나긴 빚 잔치에 돌입했다.
아직까지 단일 통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독일은 처음에는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척 했지만 결국 그리스 한 국가에만 무려 100조 원의 자금 공급 계획을 승인했다.
현재 프랑스가 독일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EU에 편입된 국가들의 면면을 들 수 있다. 독일은 동유럽 국가들을 EU에 편입시켰는데, 독일의 생산 기지이자 언젠가는 독일이 주도할 중부 유럽 지역화폐 체제의 일원이 될 국가들이다.
프랑스도 같은 목적으로 EU에 '프랑스어를 쓰고 바게트를 먹는 백인들이 사는' 북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국가들을 편입시키려 했는데 이에 대해서 독일은 일고의 고민도 없이 "노!"를 외쳤다. 프랑스는 유로화를 유지하는 게 국가 안보에도 연결되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독일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지도층은 완연히 전후 세대로 바뀌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1975년생이며, 벨기에 총리 샤를 미쉘은 1976년생이다. 오스트리아 총리는 무려 1986년생이다.
더 이상 옛날처럼 이념전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미국은 더욱 더 보호무역으로 나아갈 것이다. 예전처럼 굳이 무역으로 지원하며 동맹국을 확보하고 방파제가 될 나라들을 키워줄 필요성이 미국에는 없다.
그렇게 되면 독일은 통화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100년 전의 전쟁에 대한 악몽 때문에 독일에 끌려다니는 단일 통화 체제에 프랑스의 젊은 지도층이 진절머리를 칠 때가 오게 될 것이다. 그 때쯤이면 유로는 다시 일군의 지역화폐 그룹으로 쪼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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